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한국광해광업공단 광물이야기

테이블 상단 이미지

고려시대

인쇄하기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건국 이후 불안한 대외 정세와 잦은 전쟁으로 인해 무기 제작을 위한 철광업이 큰 규모로 이루어졌습니다. 개성에는 큰 규모의 중앙관청수공업장들이 설치되었는데 그 중에는 금, 동, 철 등의 금속광물을 처리하는 수공업관청도 있었습니다. 수공업관청으로 군기감과 장야서가 있었는데 군기감은 군대에 필요한 철제무기 등을 만드는 관서이며 장야서는 금, 은, 동, 철 등의 금속을 녹여 금속제품을 만드는 관서로 은·백동·금박·생철 세공도 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철제무기 및 농기구류 제작으로 철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개성에 있는 군기감에서 막대한 양의 철이 소요되었으며 주요 지방도시에서도 무기를 만들어 지방군을 무장시키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농기구류로 사용된 가래, 호미, 낫, 작두 등은 모두 강철로 만들어진 철제품이였고 이외에 화로, 가마 등의 철제품들도 만들어졌습니다. 주요 철광산구역에 “철소”가 설치되었는데 주요 철소로는 다인철소(충청도 충주목), 우양촌철소(전라도 전주), 수다철소(전라도 무안), 기평철소(경기도 지평), 우봉철소(황해도 우봉), 철소리(전라도 무안) 등이며 이 밖에도 <고려사>에 기술된 철광석생산지로 동계(함경남도 남부와 강원도)의 철원, 안변, 황해도의 해주, 염주(연안), 안주(재령), 경기도의 지평, 충청도의 충주 및 전라도의 나주(철야현) 등이 있습니다.

<고려사> 등에 기술되어 있는 금광산에는 “금소”들이 설치되었는데 그 이름과 위치를 보면, 옥사금소(충청도 충주목 홍주산), 금생소(충청도 공주), 거질물금소(충청도 대흥), 가림금소(충청도 가림), 금곡소(전라도 보성), 며력소(전라도 보성), 황금소(경상도 금산), 금천소(경상도 함창), 금암소(전라도 진산), 금의곡소(충청도 단양) 및 금마소(강원도 원주) 등이 있습니다. 또한 “금소”가 설치되지 않았으나 중소규모의 사금산지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주요 사금 생산지역으로는 충청도 공주 및 전라도 보성 일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은광석 생산지로는 서해도 곡주, 서해도 수덕, 강원도 명주 정선현, 경상도 신녕 리지은소 등이 전해지며, 주요 “은소”로 배음은소(충청도 홍주목), 신은소, 산즙은소, 초자은소 및 압호은소 등이 있었습니다. 이외에 금·은 채굴에 관한 기록으로는 1276년(충렬왕 3)에 최석이 홍천·직산·정선에서 인부 11,446인을 거느리고 70일 동안 금 7냥을 채취하였다는 것과 1286년에 원나라에서 온 이성 등이 은을 채굴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이후 사금생산의 격감으로 인해 금의 생산이 석금에 많이 의존하게 되었으며, 고려시대 석금의 채굴·제련기술의 미약함으로 인해 금광업은 자연히 쇠퇴하기에 이릅니다. 그 한 예로 1381년(공민왕 31)에는 금·은의 생산량 부족 때문에 양부(兩府)로부터 6품에 이르기까지 금·은을 바치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의 동은 ‘고려동’이라 하여 질이 좋아 당시에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윌의 <조선부>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동의 질이 우수하여 송나라에서도 이를 구입하여 화폐·그릇 등을 만들어 쓴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동을 많이 생산하여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하였는데 식기류제작, 종, 부처, 화폐 및 거울 등의 제조에 사용되었으며 아연과 합금하여 여러 가지 놋그릇을 만드는데 이용되었습니다. 동광석 생산지로 “동소”가 있었는데 경상도 창원지방에는 창원동소, 동천소 등 큰 동광산마을들이 있었으며, 경상도 고성지방에도 석지동소, 유식동소, 우차보동소 등이 있었습니다. 전라도 룡담지방에는 “동향소”가 있었으며 당진, 금산 등지에도 동광석 생산지들이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평안북도 철산근방과 황해도 수안, 장연지방에서도 동이 생산되었습니다.

연과 아연은 청동제품을 만들기 위한 합금용 금속으로 주로 이용되었습니다. 주요 광석생산지로는 평안도 은산지방, 항해도 서흥과 봉산일대이며, 그 외에 강원도 금성, 회양 등지와 경상도 창원지방이 있습니다.
고려의 비금속 광업으로서 주목할 만한 것은 고려청자의 원료를 수급하기 위해 백토·장석·도석·고령토 등 비금속광물의 개발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전국 도처에 “자기소” 및 “도기소” 등으로 불리는 도자기 생산지들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도자기 생산의 기본원료인 고령토가 생산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고려사>에는 1029년 문희현(지금의 문경군)에서 수정이 산출되었고, 1193 년에는 영일군에서 마노를 헌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테이블 하단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