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시대
고대시대
문헌기록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이미 철광업이 성행하였습니다. 중국의 <삼국지> 동이전 변진조에 의하면, 변진은 철의 생산지로서 철의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국 <후한서> 진한조에도 변한과 진한에서 철이 화폐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변진 지역에서의 철광상은 대부분 자철광과 적철광이었습니다. 일본의 사적에는 백제의 철광산에 대한 기록이 있어, 서기 181년쯤 초고왕 때 곡나 철산에서 산출된 철을 일본으로 가져간 사실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곡나 철산은 위치상 현재의 홍천 철산 혹은 구룡 철산 부근으로 해석됩니다.
고구려의 철광업은 이전의 고대국가들로부터 중요한 철광석생산지들을 넘겨 받았고 또한 제철야금기술을 이어받아서 높은 수준에서 시작되었습니다.주요 생산지역으로 압록강 중류유역 및 서북지방, 그리고 요양, 안산을 중심으로 한 요동지역과 두만강, 송화강유역 등이 있습니다. 또한 고구려 초기에는 철제무기 및 농기구류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서 철광업이 빨리 발전하였는데 고구려 철광업에 대한 문헌자료로 <삼국사기>에 246년 위나라 관구검이 쳐들어 왔을 때 고구려에서는 “철기 5천명이 나가서 적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고, 고구려인들이 만들어 썼다는 철재무기종류에 대한 고대 중국문헌기록들도 있습니다. 중국문헌들 중에 “고구려에는 무기로서 갑옷, 화살, 쌍가지창, 긴 창, 세모진 창, 작은 창 등이 있다”고 서술한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평양천도 이전에는 철기와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는 졸본성(환인)부근과 국내성(집안)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 중류일대가 중요한 철광업지역이었습니다. 고구려시대 체철로터자리로 대표적인 지역이 시중군과 중강군 일대인데 이 일대에는 자철광과 적철광 등의 철광석들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 개천지방에서는 갈철광을, 은률과 재령지방에서는 자철광과 적철광을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평양천도 이후에는 새로운 농경지들이 많이 확보되어 농업이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쇠보습, 쇠낫, 쇠호미 등 여러 가지 철제농기구에 대한 철수요가 늘어났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철광업을 발전시켜 국방력강화와 생산력발전을 촉진시켰던 것입니다. 고구려는 철광업 이외에도 동광업, 금, 은광업이 발전하였으며, 비금속광물로 보석광물, 고령토 등을 생산하였습니다.
고구려 유리왕 11년(B.C. 9년)에 상으로 황금 30근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기원전부터 금을 애용하였음을 알 수 있고, 이에 따른 금광산의 채굴, 사금의 채취, 야금술도 발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의 철광업에 대한 기록으로는 7 세기경 백제 무왕 때 명광개를 당나라에 수출하였고, 철갑·도끼 등이 제조되었으며 8세기경 신라 경덕왕 때 농기구를 비롯한 금속제품의 제조를 담당한 관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지리지에는 금산지방에 철야현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이러한 철야현은 그 이름으로 보아 철광석을 캐서 녹이던 큰 제철야금로가 있던 곳으로 추측됩니다. 철야현이 속해 있던 지명이 후에 전라도 나주에 속하게 되었다고 <고려사>에 기술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장흥과 남평 등에 철야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헌으로 미루어보아 전라도 나주, 무주, 장흥일대에 많은 철광산들과 제철야금로들이 있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백제에서는 철광석 외에 금, 은, 동광업도 발전하였습니다. 금강중상류지방에는 오래전부터 사금산지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공주와 그 부근에는 동광석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유물로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신촌리에서 출토된 금동관, 총청남도 공주군 송산리에서 발굴된 무령왕 무덤의 왕관과 왕비관, 그리고 충청남도 부여군 능산리에서 발굴된 여덟 꽃잎이 달린 금동관 장식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신라는 불교가 융성하여 범종의 제작에 주력하였는데, 경덕왕 때 주조된 황룡사의 종에는 497,581근, 분황사약사동상에는 306,700근의 금속이 소요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높은 야금기술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삼국지>에는 변한과 진한에서는 “철이 생산되는데 마한과 예, 왜(일본) 등이 여기서 사다 쓴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기록은 진국의 변한과 진한에서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이웃에 수출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철광업이 발전하였던 진한과 변한지역을 기본 영역으로 하였던 신라에서는 철광업이 처음부터 높은 수준에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경주부근에는 관영 또는 민영 형태의 철광산들과 제철로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며 김해를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남부지방이 주요한 철생산지였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일성왕 11년(A.D. 144년)에 백성들이 금·은·주옥 쓰는 것을 금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신라 초기에는 금·은의 사용이 대중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밖의 금 사용에 대한 기록으로는 730년(경덕왕 29)에 금 2,000냥을 당나라 현종에게 조공하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